티스토리 뷰
목차

넷플릭스 오리지널 <은중과상연>은 두 여성의 평생에 걸친 우정과 애증을 다룬 감성 드라마입니다. 저는 "그냥 잔잔한 우정물이겠지"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첫 화가 끝나기도 전에 소파에서 꼼짝도 못 하게 됐습니다. 흔히 여성 서사 드라마는 자극이 덜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 편견을 정면으로 무너뜨립니다.
말 한마디 없이 숨 막히는 '관계 서사'의 힘
흔히 긴장감 있는 드라마라고 하면 추격전이나 반전 폭로 장면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은중과상연>을 보고 나서 그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미장센(mise-en-scène)에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배우의 위치, 조명, 소품, 색감 등 시각적 요소 전체를 설계하는 연출 방식을 의미합니다. 조영민 감독은 이 미장센을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운용합니다. 두 인물이 같은 프레임 안에 있으면서도 한쪽은 빛 속에, 다른 한쪽은 그늘 속에 배치하는 식으로, 대사 한 마디 없이 두 사람의 권력관계와 심리적 거리를 시각화해 냅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특히 두 사람이 카페 테이블에 마주 앉는 재회 장면에서는 커피잔을 집어 드는 손의 떨림만으로 10년치 감정이 한 번에 전달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떤 폭발적인 OST도, 과장된 표정 연기도 없이 그 장면이 그렇게까지 타격감 있게 느껴질 줄은 몰랐거든요.
일반적으로 감성 드라마는 액션물보다 몰입감이 낮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작품은 정반대였습니다. 오히려 카메라가 느려질수록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희한한 경험을 했습니다. 극의 팽팽한 텐션(tension), 즉 서사 전반에 흐르는 심리적 긴장감이 화면의 정적인 호흡과 반비례하며 증폭되기 때문입니다.
- 조영민 감독 전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의 이해> — 인물 심리를 카메라로 읽어내는 연출로 정평
- 정적인 카메라 워킹으로 인물의 미세한 안면 근육 변화를 타이트하게 포착하는 방식 사용
- 빛과 그늘의 대비를 통한 시각적 심리 묘사가 전 회차에 걸쳐 일관되게 유지됨
김고은·박지현이 보여준 여성 연대의 진짜 무게
캐스팅 소식이 처음 나왔을 때, 두 배우의 조합이 과연 맞을까 반신반의하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저도 솔직히 "서로 색깔이 너무 다른 배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그 색깔 차이가 오히려 이 드라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드라마 작가 '류은중' 역을 맡은 김고은은 캐릭터 서사(character arc), 즉 인물이 극 전반에 걸쳐 내면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궤적을 매우 섬세하게 소화합니다. 캐릭터 서사란 단순히 대사를 잘 치는 것이 아니라 표정, 호흡, 시선의 방향 하나하나로 인물의 내면 변화를 누적시켜 나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김고은은 겉으로는 덤덤하지만 눈 속에 뜨거운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은중의 결을 시종일관 흔들림 없이 유지합니다.
반대로 성공한 영화 제작자 '천상연' 역의 박지현은 완벽해 보이는 외면 뒤에 숨겨진 결핍과 질투를 서늘하게 표현합니다. 이 인물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한 악인도, 단순한 선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박지현은 그 모호한 경계선 위에서 한 번도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캐릭터는 배우가 조금만 과해지면 설득력을 잃어버리는데, 박지현은 그 선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각본을 맡은 송혜진 작가는 <하늘재 살인사건>에서도 인물의 내면을 대사보다 행간으로 전달하는 필력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같은 방식이 유효하게 작동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부러워해도 상관없어. 네가 내 진짜 문장을 알아봐 주는 유일한 사람이라면"이라는 대사 하나가, 두 인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수십 분의 서사보다 더 정확하게 핵심을 찌릅니다.
이 드라마가 단순한 우정물을 넘어 여성 연대 서사로 읽히는 이유는, 두 인물이 서로를 구원하는 방식이 어떤 외부적 사건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증인'으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전 세계 동시 공개되며 국내외 시청자 모두에게 화제를 모았습니다.
정주행 추천할 이유와, 솔직한 단점 하나
무기력하고 방전된 주말 오후, 저는 자극적인 것 말고 그냥 감성을 좀 녹여줄 작품을 원했습니다. 그 상태로 이 드라마를 틀었고, 결국 밤을 꼬박 새워 전 회차를 끝냈습니다. 새벽에 방 불을 켰을 때 이상하게 방 안 공기가 평소보다 포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드라마가 끝난 게 아쉬워서가 아니라, 뭔가 묵은 감정이 정리된 느낌이었습니다.
이 드라마가 정주행을 권할 만한 이유를 꼽자면, 무엇보다 카타르시스(catharsis)의 설계 방식이 탁월합니다. 카타르시스란 억압된 감정이 극적인 경험을 통해 해소되는 심리적 정화 작용을 말합니다. 보통 드라마에서 카타르시스는 반전 폭로나 통쾌한 복수 장면을 통해 즉각적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달랐습니다. 켜켜이 쌓인 오해가 층층이 벗겨지면서, 마지막 회차에 이르러서야 그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옵니다. 그 해소감이 즉각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오래 남습니다.
단,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단점도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 편집(cross-cutting) 구조가 중반부에 집중되는데, 교차 편집이란 서로 다른 시간대나 공간의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며 서사의 맥락을 풍부하게 만드는 편집 기법입니다. 그런데 이 기법이 반복되는 구간에서는 감정의 흐름이 한 번씩 끊기는 느낌이 납니다. 빠른 전개를 선호하시는 분들이라면 3~4화 구간에서 체감 속도가 느리다고 느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처: 나무위키 '은중과상연'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 작품은 공개 직후부터 "올해 가장 아름답고 잔혹한 여성 서사"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서사 템포의 호불호와 무관하게, 두 배우의 연기와 대사의 밀도만으로도 정주행 가치는 충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은중과상연 몇 부작이에요? 정주행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A. 드라마 <은중과상연>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전 회차 공개 방식입니다. 회차당 평균 50~60분 내외로 구성되어 있어, 한 번에 정주행하면 주말 하루 분량입니다. 저는 실제로 하루 저녁에 전부 다 봤는데, 중간에 끊기가 어려운 구조라 자연스럽게 정주행이 됩니다.
Q. 자극적인 장면이 많은 드라마인가요? 가볍게 볼 수 있을까요?
A. 물리적으로 자극적인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심리적인 긴장감이 꽤 강합니다. 일반적으로 여성 서사 드라마는 가볍게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작품은 감정 소모가 상당합니다. 가볍게 틀었다가 감정이 크게 흔들릴 수 있으니, 컨디션이 좋은 날 보시길 권합니다.
Q. 빠른 전개를 좋아하는데 이 드라마 재미있을까요?
A. 솔직히 말씀드리면, 3~4화 구간은 호흡이 다소 느립니다. 사이다 전개나 빠른 반전을 선호하신다면 초반에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구간을 넘기고 나면 후반부의 감정 폭발이 훨씬 크게 체감되는 구조이므로, 5화까지는 일단 버텨보시길 권합니다.
Q.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새드엔딩인가요?
A. 스포일러를 피해 말씀드리자면, 단순히 해피 또는 새드로 분류하기 어려운 결말입니다. 두 인물이 서로의 존재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지만, 그 과정이 가볍지 않아서 보고 나면 복잡한 감정이 한동안 남습니다. 저는 결말 이후에도 멍하니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결론
<은중과상연>은 화려한 장치 없이 오직 두 배우의 연기와 연출의 밀도로만 승부하는 드라마입니다. 정주행을 마치고 나서 든 생각은, 이 작품이 단순히 두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오래 내 옆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가"를 묻는 드라마라는 것이었습니다. 타인의 성과와 조건에 치이며 정작 소중한 관계를 흘려보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이 드라마가 꽤 묵직하게 박힐 겁니다.
빠른 전개를 원하신다면 중반부가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느린 호흡을 통과하고 나서 얻는 감정의 해소감은, 제가 최근 몇 년간 본 드라마 중에서 가장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무기력한 주말에 뭔가 감성을 건드려 줄 작품이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권합니다.
참고: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 나무위키 '은중과상연' 문서
🎬 영화 상세 정보 및 해외 평점 확인하기
- 로튼 토마토 해외 평점: 로튼 토마토에서 평론가 신선도 지수 및 관객들의 생생한 찐 후기 확인하기
'드라마 속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고래 미장센, 자폐 서사, 법정 카타르시스) (0) | 2026.06.28 |
|---|---|
| 선재 업고 튀어 (타임슬립, 쌍방구원, 정주행후기) (0) | 2026.06.27 |
| 이태원 클라쓰 (시청률, 복수극, 박새로이) (0) | 2026.06.26 |
| 광장 드라마 리뷰 (하드보일드 액션, 누아르 미장센, 소지섭) (0) | 2026.06.26 |
|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 (메디컬 액션, 정주행, 카타르시스) (1) | 2026.06.25 |